퐁(fond)과 쥐(jus)
퐁(fond)은 고기나 생선, 또는 채소를 넣어 오랜 시간 끓여 만든 기본 맛국물로, 소스를 만들 때 중요한 베이스 역할을 한다. 퐁은 깊은 감칠맛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소스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퐁을 졸여서 농도를 높이거나, 다양한 재료와 결합하여 복합적인 맛을 내는 소스를 만들 수 있다. 이처럼 퐁은 기본 재료에서 우러난 맛을 기반으로 소스를 만들어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반면에, 쥐(jus)는 재료가 가진 고유의 수분을 가열하거나 졸여 얻은 육즙을 말한다. 쥐는 재료의 본연의 맛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며, 별다른 공정을 거치지 않고도 바로 소스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간결하다. 쥐는 졸이는 과정을 통해 농도가 짙어지거나, 다른 액체와 혼합하여 맛을 보완할 수 있지만, 그 자체로도 완성도 높은 소스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결국, 퐁과 쥐는 소스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베이스 역할을 하지만, 그 방식과 특성은 다르다. 퐁은 여러 공정을 통해 깊은 맛을 내는 반면, 쥐는 재료의 본연의 맛을 강조하며 더 간편하게 소스로 활용된다. 소스를 본격적으로 이해하고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퐁과 쥐의 차이를 이해하고, 각각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퐁(Fond) ; 소스와 수프의 기본이 되는 육수
퐁(fond)과 쥐(jus)는 둘 다 종종 '육수'로 번역되지만, 실제로 그 의미는 다르다. 퐁은 직역하면 '육수국물'로, 재료와 함께 향미채소(미르푸아, mirepoix)를 넣고 끓여 감칠맛을 우려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송아지 뼈로 만든 퐁 드 보(fond de veau)나 생선을 재료로 한 퓌메 드 푸아송(fumet de poisson)이 있다. 퐁과 퓌메는 거의 비슷한 개념이지만, 퐁과 부용(bouillon)은 구별된다. 부용도 기본 육수이지만, 주로 수프의 베이스로 사용되며, 소스의 베이스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퐁(fond)은 소스의 베이스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한국에서 그 역사는 비교적 짧다. 과거에는 소스의 기본이라 하면 에스파뇰(espagnole)이나 데미글라스(demi-glace) 소스가 주를 이루었다. 도시의 레스토랑에서는 이러한 소스들이 대부분 사용되었고, 퐁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일부 고급 호텔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1970~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에스파뇰이나 데미글라스 소스는 ‘이미 완성된 맛이라 소스마다 동일한 맛이 난다’거나, ‘루(roux)가 무거워서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점차 멀리하게 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 시기는 프랑스에서 누벨퀴진(nouvelle cuisine)이라는 새로운 요리 경향이 떠오르던 시기로, 소스는 그 자체로 맛을 강조하기보다는 다른 재료의 맛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퐁(fond)류가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송아지 뼈로 만든 퐁 드 보(fond de veau)는 데미글라스처럼 지나치게 진하지 않고, 다른 재료의 맛을 압도하지 않아 여러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중용의 육수’로 큰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퐁 역시 시간이 흐르며 요리 트렌드에 맞춰 변화를 겪고 있다.
퐁(fond)이 변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유통 상황이 개선되면서 재료의 질이 높아지자, 요리사들은 보다 깔끔하고 섬세한 맛의 퐁을 선호하게 되었다. 또한, 소규모 레스토랑이 증가하면서 시간이 많이 들고 비용이 높은 퐁을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더 간편하고 활용도가 높은 퐁이 요구되었다. 건강을 중시하는 트렌드 또한 영향을 미쳤다. 무거운 느낌을 줄이고 가벼운 맛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겨나면서 퐁의 역할과 형태가 점차 변화했다. 현재 퐁은 단순히 한 가지 형태로 정의되지 않고, 다양화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쥐(Jus) ; 소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풍부한 향의 육즙
쥐(jus)는 주스(juice), 즉 '재료의 수분'을 의미한다. 과일에서 나오는 과즙도 쥐라고 할 수 있지만, 요리에서는 '구운 즙'이라는 뜻도 포함한다. 쉽게 말해, 구운 고기에서 칼로 찔렀을 때 흘러나오는 육즙을 생각하면 된다. 이 육즙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버터로 몽테(monter)하여 더욱 맛있는 소스로 만들 수 있다.
쥐와 퐁(fond)은 재료와 만드는 과정에서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쥐가 '재료 자체의 풍미에 집중하여 다른 요소를 섞지 않고 순수한 육즙을 뽑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반면, 퐁은 여러 재료를 혼합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된 베이스이다. 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의 향과 풍미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추출하느냐이다. 재료의 향은 오랜 시간 가열할수록 점점 사라지기 때문에, 쥐는 짧은 시간 안에 끓여내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쥐의 베이스가 되는 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해 미르푸아(mirepoix)를 적게 넣는 경우도 많다.
재료의 개성이 응축된 쥐(jus)는 퐁(fond)처럼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기보다는 주로 소스로 한정된 용도로 사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가 현대 요리에서 육수의 주류로 자리 잡은 이유는 ‘재료 중심’, ‘단순함’, 그리고 ‘가벼움’이라는 시대적 키워드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쥐는 섬세한 풍미와 매끄러운 식감을 제공하여 이러한 트렌드에 완벽히 맞아떨어진다. 오늘날 쥐가 많은 요리에서 활용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오히려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